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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의 화해_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2009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우연은 가볍고 가벼움은 하잘것없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토마시가 그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 모든 마땅히 그래야 할 것들을 내려놓고 가벼움이 이끈 길 끝에 있던 테레자를 택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작가는 책의 후반부에서 똥과 키치를 앞세우며 가벼움과 무거움을 심도 있게 다룬다. 똥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될 때 나는 반사적인 불편함을 느꼈다. 겨우 그런 것에 대해 몇 장을 걸쳐 논의한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이는 내가 모든 추한 개념, 인간의 원초적인..

READ 2021.07.11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_ 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 팩토리나인, 2020 거창한 미래에 비해 오늘은 초라하고, 아름다운 추억에 비해 현재는 보잘것없다. 소설 속 시간 신과 세 제자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것처럼, 많은 이들은 미래를 위한 기회와 목표에 곧잘 시선을 빼앗긴다. 또 어떤 이들은 과거의 그림자에 매몰된다. 그렇게 매일을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혹은 이미 지나간 것을 끝없이 돌아보다 보면, 당장 손에 쥐고 있는 가장 작은 순간 역시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고는 한다. 소설 속의 꿈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선물이다. 그것은 앞으로 겪을 일에 대한 걱정 없이 쉬어갈 수 있도록, 잊었던 시간을 돌아볼 수 있도록, 그리워하되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도록 아무도 모를 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넨다. 한 차례 꿈을 꾸고 일어나면 보이지..

READ 2021.06.10

공동선을 향하여_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이창신), 『정의란 무엇인가』, 김영사, 2010 미국 질병 관리 센터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 사용을 권고하자, 적지 않은 수가 반대 시위를 벌였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 권고는 헌법상 규정된 권리를 침해한다.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하지 않을 결정권과, 착용함으로써 얻는 사회적 안보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은 전자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분명히 오류가 있지만, 그들의 주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명확하다. 바로 자유주의다. 우리는 자유롭고 이성적인 존재이며,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가진다는 생각은 미국뿐 아니라 많은 사회에서 견고하다. 위의 사례처럼 잘못된 주장의 잘못된 근거로 사용될 정도로 그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진보와 보수에 상관없이, 인간의 주체성은 많은 정치적 판단..

READ 2021.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