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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의 화해_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BoriTea 2021. 7. 11. 12:59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2009

 

 

“필연과는 달리 우연에는 이런 주술적 힘이 있다. 하나의 사랑이 잊히지 않는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성 프란체스코의 어깨에 새들이 모여 앉듯 첫 순간부터 여러 우연이 합해져야만 한다.”

 

우연은 가볍고 가벼움은 하잘것없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토마시가 그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 모든 마땅히 그래야 할 것들을 내려놓고 가벼움이 이끈 길 끝에 있던 테레자를 택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작가는 책의 후반부에서 똥과 키치를 앞세우며 가벼움과 무거움을 심도 있게 다룬다. 똥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될 때 나는 반사적인 불편함을 느꼈다. 겨우 그런 것에 대해 몇 장을 걸쳐 논의한다는 사실이 황당했다. 이는 내가 모든 추한 개념, 인간의 원초적인 부분을 눈앞에서 지우고자 하는 키치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세우는 아름다움은 달콤하고 편리하니 사비나와 같은 인물조차 키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인간 존재는 키치의 무거움으로 귀결된다. 사랑해야 할 것 같은 가치를 사랑하고, 사회가 제시하는 번듯한 구조와 틀에 스스로를 맞추고, 끝내 보기 좋게 포장된 비문 한 문장으로 남는다. 그렇게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은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인간의 전부일까? 인간은 똥을 경멸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만 똥은 분명히 그의 일부이지 않은가? 인간은 생각보다 고결하지 않고 사실 제시된 길을 걸을 필요가 없다. 키치가 말하는 가치에서, 의무에서 벗어나도 괜찮다. 조금 늦거나 빨라도 괜찮고, 틀렸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거움을 만족시키지 못할 뿐이다. 애초에 가벼움과 무거움 중 어느 쪽이 옳은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모든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데 말이다. 그저 그 두 개념은 더불어 인간을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을 거부하고 우연을 향해 창문에서 뛰어내린 토마시의 선택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그 이면에 추락을 향한 본능이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다.